커피 맛 평가의 과학, SCA 커핑 프로토콜의 핵심 이해
커핑(Cupping)은 단순히 커피를 시음하는 행위가 아니다. 이는 커피의 향미, 질감, 산미, 바디, 후미 등 다양한 요소를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점수화하는 전문적인 절차이다. 특히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 시장에서는 커핑이 커피의 등급을 나누고, 품질을 정의하는 핵심 기준이 된다.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 Specialty Coffee Association)는 이러한 커핑 절차를 표준화해 전 세계 커피 전문가들이 동일한 기준으로 커피를 평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글에서는 커핑의 전체 절차와 SCA가 제안하는 평가 항목과 기준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커핑의 목적: 왜 하는가?
커핑의 목적은 커피의 품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함이다. 로스터는 로스팅 결과를 테스트하기 위해, 생산자는 원두의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 바이어는 구매 결정을 내리기 위해 커핑을 실시한다. 특히 향미 결함이 있는지, 로스팅이 적절한지, 향미의 밸런스가 좋은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감각 기반 분석 방식이다.
SCA 커핑 기준의 역사와 배경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는 1980년대 중반, 커피 품질에 대한 일관된 평가 기준의 필요성에 의해 커핑 프로토콜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국가별, 심지어 로스터별로 평가 기준이 상이해 커피의 품질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웠다. 이후 수많은 테이스터와 과학자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현재의 10개 항목, 100점 만점 체계가 정립되었다. 이 표준은 현재 전 세계 바이어, 생산자, 바리스타가 공통의 언어로 커피를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든 기반이다.
커핑의 중요성: 단순한 시음이 아닌 품질의 기준
커핑은 커피를 감각적으로 기록하고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며, 생산과 소비 사이를 연결해 주는 언어이기도 하다. 커핑을 통해 향미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이를 언어로 정리하는 능력이 커피 산업 전반의 품질 향상에 기여한다.
SCA 커핑 절차의 개요
SCA는 커핑 절차를 12단계로 표준화하고 있다. 그 핵심은 일관성과 객관성이다. 주요 절차는 다음과 같다: 원두 그라인딩, 향미 평가(건향), 물 붓기, 젖은 향 평가(습향), 크러스트 깨기, 커피 추출, 시음, 각 항목 점수 기입. 모든 항목은 고정된 커핑 용기(150~200ml), 정확한 그라인딩, 일정한 물 온도(약 93℃)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커핑 스코어 시트의 구성
SCA의 커핑 시트는 총 10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항목은 6~10점 사이에서 점수를 매기고, 합산 후 100점 만점 기준으로 총점이 산출된다. 각 항목은 ‘프래그런스/아로마’, ‘플레이버’, ‘애프터테이스트’, ‘애시디티’, ‘바디’, ‘밸런스’, ‘클린컵’, ‘스위트니스’, ‘유니포미티’, ‘오버롤’ 등이다. 이 중 균일성, 청결함, 감미 등은 결점 유무를 따져 감점이 적용될 수 있다.
번호 | 항목 | 설명 | 평가 기준 |
---|---|---|---|
1 | Fragrance/Aroma | 건조 상태와 물을 부었을 때의 향기 | 복합성, 강도, 긍정적 특성 여부 |
2 | Flavor | 입안에서 느껴지는 전반적인 맛의 인상 | 조화, 풍미의 뉘앙스와 표현력 |
3 | Aftertaste | 삼킨 후 남는 여운과 맛의 지속성 | 길이, 깔끔함, 유쾌함 |
4 | Acidity | 산미의 강도와 품질 | 밝음, 생동감, 과일의 느낌 |
5 | Body | 입안에서 느껴지는 무게감과 질감 | 농도, 점도, 입체감 |
6 | Balance | 각 향미 요소 간의 조화로움 | 과도하거나 부족한 요소 없는지 |
7 | Uniformity | 다수의 샘플 간 일관성 | 각 컵의 맛이 균일한가 |
8 | Clean Cup | 이질적인 맛이나 결점이 없는지 | 잡미, 이취, 이물감의 유무 |
9 | Sweetness | 감미의 존재 여부와 질감 | 자연스럽고 풍부한 단맛 |
10 | Overall | 종합적인 인상과 품질 | 전체적인 만족도와 평가자의 주관적 판단 |
결점 항목과 총점 계산
SCA 커핑은 단순한 점수 누적이 아니라, 결점이 있는 경우 해당 항목에서 감점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총점이 80점 이상이면 ‘스페셜티 커피’로 인정되며, 85점을 넘으면 프리미엄급, 90점을 넘으면 익셉셔널 등급으로 간주된다. 평가의 객관성을 위해 동일한 원두를 5컵 이상 커핑하며, 평균값을 최종 점수로 사용한다.
커핑 환경의 중요성: 도구와 조건
정확한 커핑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환경 조건 역시 표준화되어야 한다. 커핑실은 환기와 온도 조절이 잘 되어야 하며, 주변에 강한 향이 없어야 한다. 또한 물은 TDS 125~175ppm의 깨끗한 물을 사용하고, 물 온도는 92~94도 사이로 유지해야 한다. 컵, 스푼, 저울 등 모든 도구는 SCA 기준에 맞는 사이즈와 재질을 사용해야 하며, 향이 배지 않도록 중성 세제로 세척된다.
‘슬러핑’의 과학: 왜 소리를 내며 마실까?
커핑 시 커피를 입에 넣으며 ‘소리 내어’ 흡입하는 것을 슬러핑(Slurping)이라 부른다. 이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슬러핑을 통해 커피는 공기와 함께 입안에 넓게 퍼지게 되고, 입천장과 비강에 빠르게 도달하면서 향미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커피의 산미, 복합성, 후미까지 더 정확히 감지할 수 있으며, 전문 테이스터들은 이 기법을 통해 수십 종의 향미를 빠르게 구별해낸다.
참여자의 역할에 따른 커핑 관점의 차이
생산자, 로스터, 바이어는 같은 커핑 테이블에 있어도 평가의 목적과 관점은 다르다. 생산자는 재배 환경과 가공의 영향을 검증하고, 로스터는 로스팅 프로파일의 완성도를 평가하며, 바이어는 상품성과 향미 매력을 중심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동일한 커피라도 참가자의 포커스가 달라질 수 있고, 각자의 의도에 따라 스코어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커핑 후 피드백 공유는 매우 중요하다.
커핑 결과의 실제 활용
커핑 결과는 단순히 점수를 매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실무에 바로 활용된다. 로스터는 커핑 결과를 바탕으로 로스팅 프로파일을 수정하고, 블렌딩 시 어떤 커피를 어떤 비율로 사용할지 결정한다. 생산자는 수확 시기나 가공 방식의 장단점을 확인하고, 바이어는 커핑 시트를 통해 계약 여부와 단가를 결정한다. 커핑은 단순한 평가가 아닌, 실질적인 커피 비즈니스의 근거 자료다.
커핑은 단순한 시음이 아니라, 커피의 가능성과 품질을 수치로 번역하는 작업이다. SCA 기준은 전 세계 바리스타와 커피 프로페셔널들이 동일한 언어로 커피를 이해하게 만든다. 향미, 산미, 바디, 밸런스 각각에 집중하는 과정은 감각 이상의 분석이다. 정확하고 일관된 평가 기준은 커피를 취향에서 기준으로 끌어올린다. 한 잔의 커피에 담긴 이야기와 품질을 이해하려면, 커핑은 꼭 거쳐야 할 관문이다.